허구와 풍자 뒤섞인 북한 다큐멘터리
‘주체사상’은 제목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선뜻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통치 체계와 이념에 관한 영화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작가 짐 핀(Jim Finn)의 ‘주체사상’은 북한을 소재로 한 ‘실험영화’, 혹은 ‘다큐픽션’(docu-fiction)으로 구분하는 게 적절하다. 2008년에 발표된 ‘주체사상’은 사실적 기록들을 활용한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작가의 상상력이 혼합되어 창작된, 실험성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연출한 모큐멘터리(mocu-mentary), 사실을 기록하려는 다큐멘터리, 그리고 풍자가 가득한 코미디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공산주의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핀 감독의, 공산주의를 소재로 한 세 번째 작품이다. 핀 감독은 김정일이 영화광이었다는 사실과 1978년 신상옥 감독의 납북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작품을 구상했다. 북한의 실상을 담은 영상 자료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영화에는 훈련과정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북한의 매스게임과 북한에서 제작된 TV 드라마도 일부 소개된다. 핀 감독은 김정일이 1973년 저술한 논문 ‘영화예술론(Film Art Theory on the Art of Cinema)’을 탐독하고 제작에 임했다. 김정일이 논문에서 기술한 소위 ‘주체 영화’의 흔적들을 통해 북한의 체제가 다른 기존의 사회주의와 다르다는 것을, 영화와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명한다. 영화에는 재일동포 비디오 아티스트 윤정이 등장한다. 그녀는 ‘주체영화’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북한에 와 있다. 불가리아 작가가 그녀와 지속적으로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윤정이 평양을 배경으로 만든 SF영화의 클립들이 곳곳에서 소개된다. 윤정은 김정일이 북한의 영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단행한 ‘신상옥 납치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허구적 인물이다. 서구의 작가가 북한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주체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이런 실험성 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핀 감독은 이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 영화제의 주최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초청을 받지 못했다. 주체사상과 유머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체이다. 핀 감독은 주체사상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으면서 넘쳐 흐르는 유머로 북한의 실상을 묘사한다. 도발의 주체는 핀의 작가적 상상력이다. 이 때문에 일부 영화 사이트들은 이 영화를 ‘코미디’로 분류하고 있다.